단시 (短詩)-하 이 쿠
(근암/유응교 시인님으로 부터 컨닝한 것입니다)
새벽길 하얀 눈
모이 찾는
이름모를 산새!
다 떠난 고향집 뒷마당
가지 끝
홍시 하나!
문풍지 사이로
빤히 쳐다보는
귀뚜라미 눈!
바람도 차마
지나가지 못하네
코스모스 외롭게 핀 길!
불을 켜니
귀뚜라미 깜짝 놀라네.
불을 꺼줄 수밖에!
여름밤 별 하나
뚝 떨어진다
우리도 저 별인 것을!
동자승 손을 떠나
겨울 하늘
날아가는 연!
제 집을 하얗게 짓고
어둠 속에 갇히는
누에고치!
산비탈 채마밭에
호미 닮은
할머니 허리!
하얀 눈 사이사이
피어나는
노오란 개나리!
바람결에 흩날리는
저 벚꽃
한때뿐인 영화!
빈들에서 호올로
춤추는
허수아비!
비 내리는 늦가을
모자 쓰고 있는
허수아비!
밭가는 소 등위에
함께 가고 있는
나비 한 마리!
누구를 부르나
저 갈대의
끝없는 손짓!
고사 상에 놓인
돼지 입의
돈 뭉치!
지구는 커다란 어항
그 속에
고래와 새우들!
아름다운
연꽃 앞에서도
하품하는 하마!
나무꾼 지게 위에
나풀나풀 함께 가는
꽃나비!
늦가을 빈집
해 뜨고 해 저도
멈춰선 시계!
비행기를 탈 때만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마음!
빛나는 태양아래
감출 것은
하나도 없네!
개구리가 폴짝
꽃눈도 화들짝!
경칩!
싸늘한 산 시냇가
붉게 핀
진달래 하나!
개나리
울타리 아래
어미 찾는 병아리!
개나리
울타리 앞에
졸고 있는 삽살개!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비켜 가면 어떠리!
검은 땅위에
떨어져 뒹구는
백목련!
어두운 골목 눈이 부신
흐드러지게 핀
백목련!
잔설을 헤치고
돋아나는
복수초!
찬비 속에
흐르는 물위로
떨어지는 동백!
황색이 아련한
하얀
목련꽃!
어머니 묘소 앞에
외로이 핀
제비꽃 하나!
제비들 다 날아간
봄날 오후
제비꽃 한들한들!
이른 봄
화개장터 나룻가
때 아닌 눈발!
쌍계사의
저녁 종소리에
벚꽃 잎 하드르르!
보리밭 이랑위에
종달새
파들 파들!
노을 진 언덕위에
네 잎 크로바 찾는
하얀 손!
칠의사
무덤위에
무성한 여름 풀!
주막집 평상 위
술 잔 위에 떨어지는
벚꽃 잎!
빈상수리 나무에
오르락 내리락
청설모!
외진 길
홀로 가는 길
얼굴 붉힌 홍매화!
성긴 돌담길
다투어 산수유 피니
때 아닌 별무리!
첫눈 내리는 날
대숲사이
쫑긋거리는 굴뚝새!
텅 빈 화계사
혼자 지키며 우는
소쩍새 소리!
모두 떠난 뒤
나뭇가지 끝
홀로 남은 오동잎 하나!
휘늘어진
대나무 끝마다 피어나는
눈 꽃송이!
토담 사이로
길을 물어 돌아오는
꽃샘바람!
그리운 님
손끝마다 물들이는
봉숭아!
뻐꾹새 우는 고추밭에
풀물로 얼룩진
아낙네 옷섶!
오래된 연못 속에
언제나 새로 피어나는
연꽃잎!
겨울밤 이슬 길목
그리움에 가슴 저미는
달맞이꽃!
달빛아래 임 그리워
하얗게 우는
설토화!
멍든 가슴 도려내고
허공에 높이 솟는
방패연 하나!
강 언덕에 새봄오니
피어나는
아지랑이!
바다는
그토록 허망한가
저리도 큰 하얀 웃음!
바람 따라 집을 나서는
정처 없는
민들레!
빈집에 누가 있나
시리도록 불 밝힌
백목련!
끝없는 좌절을
오히려 사랑하는
작은 분수여!
걱정도 많다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나룻배!
봄비 내리어
땅속깊이 흘러드는
새순 돋는 소리!
늦가을 해인사
퇴설당에 머무는
풍경소리!
겨울밤 산사
추위에 떨며 홀로 퍼지는
독경소리!
숙소 찾는
나그네에게 손짓하는
코스모스!
어린시절
삘기 꽃 함께 빨았던
소꿉동무!
잡념 하나
깎아내지 못하는
삭발된 머리!
희끗 희끗한
아내의 머리위에
흩날리는 벚꽃!
가야할 때를 알고
홀연히 가는
저 벚꽃!
갑자기 우는
꿩 울음소리에
떨어지는 벚꽃 잎!
때 이른 가을비에
후드득 떨어지는
은행잎!
거울같이 고요한 호수
그러나 풀잎 하나에
깨어지는 수면!
빈집 이른 봄
각이진
봄볕 한 장!
이따금 그대 생각,
버들강아지
봄눈 뜨듯!
누가 돌보지 아니해도
아름다운
벌과 나비!
구름도
붙잡지는 못하는
한가위 보름달!
개 짖는 소리에
놀란 복숭아꽃
우수수 지네.
뽕 나무
밭 사이에
낮닭이 우네.
끝없는 파도!
단명한 것들의
위대한 성취!
산사의 범종소리에
풀잎의
이슬이 놀래다.
목마른 가을밤!
달이 떠있는 우물물
차마 건드리지 못하네.
마음의 문을
여는 이가
위대한 선각자.
손가락 끝으로
어망을 치고
무수히 고기를 낚다.
문을 열면 탄생,
문을 닫으면 죽음.
매화가 만발하다.
봄에 둘러싸여
도망 갈 곳이 없다.
니 땅 내 땅이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우리는
대지에 속해있는걸.
인간이 그은 대지의 선위에
눈은 내리고 강물은 흐르고
초원은 푸르다.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문 속에 문이 있고
문속에
또 다른 문이 있다.
개미가 부지런히 기어가고 있다.
바로 앞에 코끼리가
오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입안 가득 상추쌈 밀어 넣고
평상 끝 고추잠자리
곁눈질로 바라보네.
물위에 비친 제 그림자
바라보고 서 있는
왜 가리!
백 매화 피는 아침
봄볕에
눈물짓는 백설!
홍매화 엿보더니
꽃 문 열자
툭 떨어지는 흰눈!
청 매화 피는 밤
휘파람새에
시샘하는 춘설!
다리건너 절벽 위
흰 눈 속에 핀
홍매화!
*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짧은 시로
5.7.5의 17음 형식으로 지어야하고
계절 감각이 나타나야 하고
느낌표가(!) 들어가야 하며
해학적이고 응축된 어휘로
인정(人情)과 사물의 기미(機微)를
재치 있게 표현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단시의 형식 속에 무한한
철학과 사상이 들어간 시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풍덩!"은
일본에서 제일로 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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